기후에너지환경부(기후부)가 원전 전력직접구매(PPA)에 사실상 반대하는 입장을 정리한 것으로 확인됐다. 박수민 의원실이 기후부에서 제출받아 공개한 자료에서 기후부는 “특정 사용자가 저원가 발전기를 독점하면 다른 소비자에게 요금 부담을 전가하고 형평성 문제를 유발한다”고 밝혔다. 원전 PPA는 발전사와 기업이 전기를 직접 사고파는 계약이다.
기후부는 9월 초 내부 토론에서 원전 PPA 도입은 잠정적으로 불가하다는 방침을 정했다. 대외적으로 드러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철강 등 산업계는 탈탄소와 수소환원제철을 이유로 도입을 요구해 왔다. 정부 판단이 업계 요구와 정면으로 부딪히는 셈이다.
기후부가 든 이유는 요금 부담 전가와 형평성이다.
반대한다고 해서 탈탄소 효과까지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9월 9일 국회 토론회에서 고현 기후부 수소경제기획과장은 원전 PPA가 산업 탈탄소에 기여할 수 있다고 인정했다. 다만 저가 전력의 배분 기준과 다른 소비자의 전기요금, 대기업 특혜 가능성을 따져야 한다고 했다. 재생에너지 가격이 낮아질 때까지 원전을 청정수소 생산의 과도기 전원으로 쓰는 방안도 검토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토론회에서도 중소기업과 일반 사용자에게 비용이 넘어가지 않게 하는 방안이 쟁점으로 올랐다. RE100은 재생에너지를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원전 PPA 전기가 RE100 실적으로 인정되기 어렵다는 점도 쟁점으로 거론됐다.
월성 2호기의 연간 발전량은 약 48억 kWh다. 올해 설계수명이 만료된 이 원전은 운영허가 기간이 11월 1일까지이고 계속운전 심사가 진행 중이다. 이 원전을 원전 PPA로 돌리고, 원전보다 발전단가가 비싼 LNG 발전으로 빈자리를 메우면 한전의 연간 전력 구입비가 약 3,800억 원 불어난다는 추산이 나온다. 전체 전력 소비자가 이를 균등하게 나눠 지면 kWh당 약 0.69원의 요금 인상 요인이다.
월평균 335kWh를 쓰는 도시 지역 4인 가구라면 연간 전기요금이 2,780원 늘어나는 수준이다.

요구하는 쪽은 계산의 출발점부터 다르다. 철강업계는 산업용 전기요금이 kWh당 180원대이고, 신재생에너지 공급인증서(REC) 비용까지 더하면 실질 전력비가 200원대 중후반으로 올라간다고 주장한다. 수소 생산단가는 kg당 1만3,500원 이상이어서, 원전 전기 없이는 수소환원제철의 경제성을 맞추기 어렵다는 것이다. 수소환원제철은 석탄 대신 수소로 철광석에서 산소를 제거하는 제철 공법이다.
9월 9일 같은 토론회에서 정은미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무탄소 PPA의 대상을 원전과 소형모듈원전(SMR), 수소로 넓혀야 한다고 제안했다. 법 개정 일정과 로드맵을 명확히 해야 하고, 전통산업의 고용과 지역경제에 미치는 파급도 고려해야 한다고 짚었다.
토론회 발제자 황재훈 씨가 소개한 프랑스의 CAPN 방식에서는 전력 다소비 기업이 프랑스전력공사(EDF)에 대규모 선급 투자금을 내고, 핵연료비와 유지보수비 같은 가동 원가의 변동 위험을 함께 진다. 그 대가로 원가 수준의 전기를 장기 할당받는다. 황 씨는 이 방식을 기존 원전 전력 약 50TWh에 15년간 적용하면 약 15조 원의 선납금이 필요하다고 추산했다. 선납금은 전기를 받기 전에 먼저 내는 돈이다. 황 씨는 기업이 입을 수 있는 손실과 운영자 재원의 예측 가능성도 함께 따져야 한다고 했다.
분담 방식은 나라마다 다르다. 핀란드에서는 기업들이 원전 건설 특수목적법인(SPC)에 주주로 출자하고, 지분만큼 원가로 전기를 우선 인수하는 방식으로 올킬루오토 3호기를 지었다. 요아킴 피셔 주한덴마크대사관 상무참사관은 같은 토론회에서 정부 차액계약(CfD)과 기업 PPA를 병행하는 투트랙과 전용선 제도 도입을 제안했다. 강민구 변호사는 기존 원전 사업자가 참여하는 방식과 민간 투자와 연계하는 방식을 나란히 두는 한국형 원전 PPA를 제안하면서, 원자력안전위원회의 독립 심사는 유지해야 한다고 했다.
국내 논의도 이어지고 있다. 10월 7일 K-GX 국민보고회에서 이준호 고려대 교수는 PPA로 전기를 생산단가 수준에 공급받을 수 있도록 정부가 지원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같은 자리에서 정부는 “기업투자를 전제로 저렴한 전기의 안정적 공급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이상휘·박형수·고동진 의원 등은 원전 PPA를 허용하는 전기사업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는 “단순 특혜성 요구는 차단하되” 민간이 자본과 리스크를 분담하는 방식에는 전기사업법상 전력 인수 특례를 여는 등 “제도적 출구를 마련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프랑스의 선급 투자도, 핀란드의 지분 출자도 기업이 비용과 위험을 나눠 지는 구조다. 남는 쟁점은 도입 여부보다 비용과 위험을 누가 나눠 지느냐다.
연관 기사
제호: 비쿨진(BeCulZine) 발행일: 2026년 10월 19일 전화: 010-5709-0817
주소: 서울시 마포구 잔다리로 57, 지하 일부 등록번호: 아56407
등록년월일: 2026-02-26 발행인: 이소희 편집인: 유성현 청소년보호책임자: 황양연
© Copyright 2026, All Rights Reserved
Please login or subscribe to continue.
No account? Register | Lost password
✖✖
Are you sure you want to cancel your subscription? You will lose your Premium access and stored playlists.
✖
Be the first to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