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통상부가 15일 대한상공회의소에서 박정성 통상교섭본부장 주재로 EU 산업가속화법(IAA) 대응 민관합동 TF 첫 회의를 열었다. 자동차·배터리·철강·원전 업계와 한국무역협회, KOTRA가 참여했다. 산업부는 입법 과정에서 “역내산 우대 요건 강화 및 신뢰 파트너에 대한 동등성 인정 축소” 움직임이 나와 한국 기업에 대한 차별 우려가 커졌다고 밝혔다.
역내산 우대라는 원칙만으로는 한국 기업이 불리해질지 판단하기 어렵다. 갈림길은 한국 같은 FTA 체결국 제품을 EU산과 똑같이 대접하는 조항이 살아남느냐에 있다.
산업가속화법은 유럽연합 집행위원회가 3월 4일 제안했다. 핵심은 공공조달과 공적 지원을 받는 사업에 저탄소 또는 EU 원산지 요건을 붙이는 것이다. 유럽의회 조사처(EPRS)가 9월 17일 낸 브리핑에 따르면 대상은 철강·시멘트·알루미늄과 배터리·태양광·풍력·히트펌프 같은 넷제로 기술이다. 배터리·전기차·태양광·핵심원자재에 1억 유로를 넘는 외국인 투자가 들어올 때도 조건을 달 수 있다. 목표는 EU 국내총생산(GDP)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을 2024년 14.3%에서 2035년 20%로 올리는 것이다.
한국 업계가 기대는 곳은 제8조다. 이 조항은 FTA나 관세동맹을 맺은 나라, 또는 세계무역기구(WTO) 정부조달협정(GPA) 당사국의 제품을 EU 원산지로 간주한다. GPA는 가입국끼리 정부조달 시장을 서로 여는 WTO 복수국 협정이다. 다만 “그 협정상 EU의 관련 의무가 존재하는 경우”라는 단서가 붙는다. EPRS 브리핑의 그림에서 한국은 GPA 참여국이자 조달 조항이 있는 EU FTA 파트너로 표시됐다. 본문에 한국이 따로 거명되지는 않는다.
세주르네 부집행위원장은 이 조항이 약 20개국에 적용된다고 설명했다. EPRS는 EU가 맺은 FTA 가운데 조달 규정을 담은 것은 30개 미만이라고 정리했다. 조달 조건 자체는 WTO·FTA 의무와 일관돼 보인다는 전문가 평가가 있지만, 소비 보조금까지 EU 원산지에 묶으면 “법적 다툼의 심각한 위험”이 생긴다는 점도 EPRS는 짚었다.

유럽의회 공동보고관인 안나 카바치니, 크리스토프 그뤼들레르, 피에르 주베 의원이 9월 8일 내놓은 초안은 FTA 체결국의 자동 인정을 삭제했다. 대신 집행위가 위임법으로 제3국을 포함시키는 옵트인 방식을 택했다. 포함되려면 내국민대우, EU 경제안보와의 정합성, 국제노동기구(ILO) 기본협약 비준·이행, 파리협정과 국내 탄소가격, 유엔 글로벌콤팩트, 비교 가능한 저탄소 수요 조치, 우회 위험 없음 등 7개 요건을 동시에 충족해야 한다.
회원국 쪽도 길이 다르다. 아일랜드 의장국이 7월 말 회람한 ‘파트너 원산지’ 타협안은 협정이 있는지가 아니라 해당 제품에 대해 EU가 실제로 조달 약속을 했는지를 따진다. 두 안 모두 확정된 입장이 아니다.
| 구분 | 집행위 제안(3/4) | 이사회 의장국 타협안(7월 말) | 의회 보고관 초안(9/8) |
|---|---|---|---|
| 성격 | 제안 | 타협안(확정 아님) | 초안(의회 합의 아님) |
| FTA·GPA국 제품 | EU산으로 간주(협정상 관련 의무 있을 때) | 해당 제품에 대한 EU의 실제 조달 약속 여부로 판정 | 자동 인정 삭제, 집행위 위임법으로 포함(7개 요건) |
| FDI 조건 문턱 | 1억 유로 초과 | – | 5천만 유로 |
자료: EPRS·Oxford Business Law Blog·Agence Europe 종합. 이사회 타협안의 FDI 문턱은 자료에 없음
옥스퍼드대 법학 블로그에 글을 쓴 유럽오픈대 경제학부의 루치아노 마갈디 사르델라와 밀라노 운이트레대 마테오 만투아노 교수는 8월 25일 이사회 타협안을 두고 “국제통상법에서 차별은 칭찬이 아니다”라고 적었다. 제품별로 대상국을 가리는 방식은 긴장을 풀지 못하고 옮겨 놓을 뿐이며 행정 부담도 키운다는 것이다. 로펌 프레시필즈는 10월 13일 의회 보고관 초안이 “의회 합의를 반영하지 않는다”고 짚었다.
무엇을 EU산으로 볼지를 두고 회원국 의견은 갈려 있다. 독일 카테리나 라이헤 경제장관은 9월 24일 파트너국 제품도 포함하자는 “메이드 위드 유럽”이라는 원칙을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같은 날 이탈리아 아돌포 우르소 기업장관은 논의가 “27개 회원국의 산업 기반”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했다. 프랑스는 EU 우선을 엄격하게 요구하고, 스페인은 3단계안을 내놨다.
의회에서도 EU산의 범위를 좁히자는 목소리가 나왔다. 협상을 이끄는 그뤼들레르 의원은 4월 23일 집행위 안이 “매우 부실”하다며 EU 우선 대상을 아이슬란드·리히텐슈타인·노르웨이 같은 인접국으로 줄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3월 집행위안이 나온 직후 유럽국민당(EPP)의 크리스티안 에얼러 의원은 “보호주의 경제정책은 해법이 아니다”라고 했다. 범위를 좁히자는 목소리와 보호주의를 경계하는 목소리가 함께 나와 있어 FTA 체결국 인정 조항이 어디서 멈출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자동 인정을 지운 초안의 공동보고관이기도 한 카바치니 IMCO(내부시장·소비자보호위원회) 위원장은 9월 26일 인터뷰에서 “한국 같은 제3국 기업을 겨냥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EU와 한국이 중국의 산업 과잉 생산으로 비슷한 압력을 받고 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한국자동차연구원 김한솔 책임은 6월 보고서에서 한국과 일본이 FTA·GPA 체결국이어서 “상대적 완충 여지”가 있다고 봤다. 같은 보고서는 과도한 역내 생산 요건이 완성차 제조 비용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보고서는 발효 시점을 2027년 이후로 내다봤다.
산업부에 따르면 정부는 3월 이후 정부입장서를 네 차례 냈고, 장관이 9월 9일 EU 성장담당 수석부집행위원장을, 박정성 본부장이 9월 30일 통상담당 집행위원을 만났다. 유럽의회에서는 한반도관계대표단(5월 28일), 국제통상위원회(6월 9일), 내부시장위원회(9월 23일)에 입장을 전달했다. 박 본부장은 한국이 “신뢰할 수 있는 협력국”이라며 기업이 “차별받지 않도록” 입법 과정에 대응하겠다고 했다.
다음 고비는 12월이다. 유럽의회 1독회가 12월 14일로 잠정 잡혀 있고, 이후 이사회·의회·집행위의 3자 협상이 이어진다. 산업부는 이사회안과 의회안이 연내 확정될 것으로 보고, 이 기간에 아웃리치를 집중 전개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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